최근 하루키와 함께하며

권수가 중요한 건 아니지만 요즘 책 읽는 스피드를 올리려고 노력 중.

내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는 아이들의 눈길을 애써 외면하는 것도 참 할 짓이 못 된다.

한동안 '권력과 싸우는 기자'들과 함께 워터게이트에 빠져 있느라 도무지 다른 책에 손을 댈 수가 없었다.

-이 책 덕분에 영화 '대통령의 음모(All the president's men)' DVD까지 사서 보게 되었다-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 리스트를 섭렵하고자 고심 끝에 선택한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는 조악한 번역 덕분에 읽던 것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이놈의 책은 페이지를 넘기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다. 먹기 싫은 걸 억지로 삼키면 탈이 날 거라고 판단해 일단 패스.

 

다음으로 좀 뜬금없지만 하루키의 에세이 '슬픈 외국어'를 집어들었다. 

가볍게 읽을 요량으로 선택한 책이지만 상당한 울림이 있었던 책이다.

간략하게 살펴보자면, 이 책은 1991년부터 약 4년 반 동안 미국에 체류하면서 겪었던 소소한 일들을 풀어 쓴 것.

하루키는 이 글들을 통해 상당 부분 미국 문화에 대한 다분히 개인적인 비평을 시도하고 있다.

행간에는 외국 생활에서 느꼈던 그 나름의 고충이 묻어난다.

특히 언어라는 측면에서 그가 회의를 느꼈던 건 숙명과도 같은 것이었다고 본다.

하루키는 자국어의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그래야만 더욱 자기 자신의 본질에 가까운 글을 쓸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는 "자명성이라는 것은 영구불변의 것이 아니다"라는 그의 말에서 잘 드러난다.

언어적인 면에서 우리가 자명하다고 믿는 것들이 실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하루키는 '상실의 시대'가 히트를 친 이후 일본어적인 속박에서 벗어나야만 그보다 더 나은 작품을 쓸 수 있다고 믿었다.

그렇게 이방인 생활을 하며 내놓은 작품이 '태엽 감는 새'다.

-흠, 난 아직 읽지 않았다. 실은 안 읽은 게 태반이다-

 

암튼,

책을 읽고 나면 작가의 세계에 동화되는 경향이 있다.

이미 뻔히 알고 있는 것임에도,

맥주가 미친 듯이 먹고 싶고,

재즈가 듣고 싶어진다!

그래서 Miles Davis의 Kind of Blue 앨범을 구입했다.

쥐뿔도 모르면서.

나의 음악 취향에 변화가 오는 것을 아주 긍정적으로 생각하련다. 훗.

 

참,

그 이후 또 하루키의 책에 손을 댔다.

초기단편집 '개똥벌레(혹은 반딧불이)'.

'상실의 시대'의 모태가 된 작품 '개똥벌레'가 수록되어 있다.

그 연결고리를 살펴보는 재미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헛간을 태우다'가 참 인상적이었다.

 

참으로 뜬금없게 그 다음 집어든 책은 '위대한 개츠비'다.

김영하가 번역한, 그래서 더 기대가 되는.

 

암튼,

요 근래 다시금 하루키를 생각해 보게 되어 좋았더랬다.

팍팍한 일상에 소소한 즐거움.

마음 맞는 동료들, 지인들과 함께 하고픈

소주 한 잔 또는 맥주 한 잔의 간절함과도 같은.

by anarchist | 2010/03/08 02:21 | 트랙백 | 덧글(0)

 

괴물들이 사는 세상

누구라도 붙잡고 따져 묻고 싶다. 이게 말이 되는 일이냐고,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냐고. 가슴이 먹먹하고  부끄럽다. 그냥 이 땅에서 사는 게 부끄럽다. 이 땅에서 도망가고 싶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후안무치한 사람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 상식 따윈 가볍게 무시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이다. 내가 사는 이 곳은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다. 괴물들이 사는 세상이다. 누구라도 붙잡고 하소연하고 싶다. 사람 되긴 힘들어도 괴물은 되지 말자고, 부끄러운 줄 알라고..

이제는 부디 편히 잠들 수 있는 곳으로 가시길..

by anarchist | 2009/05/23 14:24 | 하루의 단상 | 트랙백 | 덧글(0)

 

섹스, 거짓말 그리고 플라세보 효과

며칠 전 한 친구 녀석이 술자리에서 이런 얘기를 해주었다. “나 야동 보는 시간을 하루 30분으로 줄였어.” 야동 시청 시간을 단축한 것이 뭐 그리 대수인가 하고 한 귀로 흘려버릴 수도 있겠지만 이는 그리 단순한 사안이 아니다. 한번 야동에 몰입하면 한나절은 훌쩍 넘기는 것이 녀석의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야동에 대한 탐닉으로 정상적인 생활이 힘들 정도였으니, 녀석의 발언은 일상의 패턴이 이제 정상 궤도에 진입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문제는 야동 시청 시간을 단축하게 된 경위다. 이 녀석은 자기 자신을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로 규정하며 약물을 복용해왔는데 최근 병원을 옮기면서 치료효과가 더욱 좋아졌다고 믿고 있다. 녀석이 말하는 치료효과에는 과잉 성욕의 정상화와 식욕 저하도 포함되어 있다. 서너 달 전 모습과 달리 몰라보게 볼에 살이 오르고 배가 나온 놈이 하는 말이니 도무지 신뢰가 가지 않았다. 아무래도 녀석은 약물보단 심리-사회적 치료가 더 필요할 듯했다. 내가 보기에 녀석은 약물의 효과보다는 심리적 효과를 더 보고 있는 것 같다. 의사와 약물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빚어낸 결과가 아닐까 한다. 아무튼 이전에 비해 야동을 보는 시간이 줄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환영할 만했다. 뭐든 과하면 독이 되는 법이니까.

또 다른 친구의 얘기를 해볼까 한다. 제약회사를 다니는 한 친구는 회사에서 나오는 발기부전 치료제의 효과를 역설하며 주위 친구들에게 그 약을 나눠준다. 나눔의 정신을 몸소 실천하는 훌륭한 친구다. 주위 친구들은 이 약의 효능에 대해 경탄해 마지않는다. 그 중 한 친구는 약 복용 시 삽입에서 사정까지의 시간이 두 배 이상 늘어나고 사정 후에도 재발기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무척 짧아져 그 효과가 탁월하다는 평을 들려주었다. 그의 여친 역시 좋아죽더라는 말도 곁들이면서. 그는 약을 좀 더 달라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손을 벌렸다.

위 두 경우에 등장하는 약의 실제 효과는 어떠할까. 물론 의학적으로 검증된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것을 부정할 순 없다. 무서운 건 믿음의 힘, 긍정의 힘이다. 심리적 요인이 미치는 영향을 무시할 순 없다. 저 두 친구는 약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져서 약의 효능을 신성시한다. 저들은 야동을 보는 시간이 늘어나거나 섹스 지속시간이 줄어드는 경우를 약의 복용 여부에 근거하여 판단할 것이다. 약에 대한 지나친 충성도가 그 효과를 극대화한 면도 충분히 있다는 말이다. 그 약들이 가짜 약은 아니지만 심리적 요인으로 인한 효과는 플라세보 효과와 다를 바가 없다. 믿어라! 약의 효능을! 믿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섹스는 심리전이다. 서로 만족할 만한 섹스를 하려면 상대를 잘 이끌어야 하고 배려해야 하며 자신감도 가져야 한다. 내가 만족하기 위해서는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 이게 말이 쉽지 얼마나 어려운 건지는 굳이 말 안 해도 다 아는 사실이다. “벌써 끝났어?” 혹은 “아직 멀었어?”라는 이 말이 던져주는 수치심과 절망감,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조금 과장하면 평생 트라우마에 시달릴 수도 있다. 도대체 이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툭툭 내뱉는 사람과 어떻게 잘 해낼 수 있겠느냔 말이다. 그럴 때마다 정 떨어지는 얼굴을 베개로 가리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부디 상대방의 테크닉이 마음에 안 든다고 다짜고짜 불만부터 얘기하지 않기를 바란다. 서로 상대를 배려하고 칭찬하고 자신감을 북돋워주는 것이 중요하다. 섹스 중에도 플라세보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상대방의 칭찬 한 마디에서 자신감을 얻게 되고 힘을 얻게 된다. 난 절대 거짓말은 할 수 없다는 따위의 말은 개나 줘 버려라. 선의의 거짓말이란 이런 때 해당되는 말이겠다. 어떤 말들이 좋은 것인지는 많은 잡지에 섹스 매뉴얼이 잘 나와 있으니 새삼 다시 언급하지는 않겠다. 전희의 중요성 따위로 연결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섹스는 쌍방이 즐거워야 한다. 나만 좋으면 좋은 게 아니란 말씀이다. 믿음과 신뢰로 인한 플라세보 효과가, 많은 연인들의 침대 위에서 나타나기를 바란다.


*플라세보 효과:어떤 약 속에 특정 유효성분이 들어 있는 것처럼 위장해 환자에게 투여하면 실제로 그런 효과를 거둔다는 이른바 '위약(僞藥) 효과'를 말한다.

by anarchist | 2009/05/11 05:18 | 잡글 | 트랙백 | 덧글(0)

 

◀ 이전 페이지다음 페이지 ▶